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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꿈꾸던 아이, 학교폭력에...

김연주 기자 carol@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6-12 17:18

[피아니스트 꿈꾸던 아이, 학교폭력에 인생이 산산조각]
어딜 가든 '왕따 꼬리표' - 서울로 전학오자 놀림감 돼, 담뱃불로 지지고 침 뱉고…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숨어 아이 몸에선 늘 나프탈렌 냄새
6년 괴롭힘에 정신이상 - 학교에 재발방지 부탁했지만 "아이 성격 문제있다" 말만…
우울증·강박증·대인기피증… 부모에 칼 휘두르기까지 "국가, 내 아들에 배상하라"

 

"저 중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스물세 살 김모씨는 요즘 주말마다 아버지(48)와 함께 동네 산을 오르며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라고 다독거리지만 아들은 그때만 고개를 끄덕일 뿐 돌아서면 "자꾸 머릿속에서 나쁜 생각만 떠오른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한다.

6년 왕따폭력에 정신병원 신세… 교육감·국가에 1억4000만원 소송… 지난 4월 7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한 김모(23)씨가 쇠창살 너머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김씨는 중2 때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이 때문에‘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다 성인이 된 지금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김씨는 지난달 서울시교육감·광주시교육감 등 국가를 상대로 1억4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최종석 기자 comm@chosun.com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창 시절 6년간 줄곧 학교 폭력을 당한 김씨는 그때 트라우마로 정신분열 증세가 심각해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았다. 김씨는 처음 학교폭력을 당한 시기로부터 8년이 지난 지난달 국가(서울시·광주시교육감)를 상대로 학창 시절 학교 폭력을 당한 데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화장실에만 숨어지낸 15살

김씨의 마지막 행복은 중1 때 대전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던 시절이다. 2학년 때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 I중으로 전학 온 이후부터 김씨 인생은 크게 달라졌다.

학생들은 지방에서 온 데다 내성적인 김씨를 놀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거나 덩치가 크다고 '호빵맨' '정력맨'이라고 불렀다. 커터 칼로 김씨 교복 칼라 부분을 긋고, 담뱃불로 지지고,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다. 왕따를 당해 늘 혼자 밥을 먹었다.

김씨 아버지는 수차례 담임교사를 찾아가 재발 방지를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들이 반 친구에게 맞아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 김씨 가족은 교장에게 "가해학생들을 전학 보내달라"고 했다. 학교는 "가해·피해자 간 말이 다르다"며 요지부동이었다. 학교는 오히려 "김씨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주변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참다못한 김씨 가족은 "우리가 전학 갈테니, 학교장 추천서를 써달라"고 했다. 교장은 그마저 거부했다. 김씨는 할 수 없이 친척 주소로 위장전입한 뒤 집에서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K중으로 전학 갔다. 가해학생들에 대해 민·형사 소송도 제기했다. 이후 I중에서 김씨를 괴롭힌 가해자 중 일부는 법원에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고, 가해자 부모들은 2800만원의 합의조정금을 내기도 했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I중 교장과 교사가 학교 폭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점을 인정하고 김씨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한 번 붙은 '왕따' 꼬리표는 김씨를 지겹게 따라다녔다. K중에서도 역시 왕따를 당해 일주일도 안 돼 다시 G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하지만 G중 일진들도 집단으로 김씨를 괴롭혔다. 김씨 아버지는 서울교육청 장학사도 만났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당시 가족들은 학교를 다녀온 김씨에게서 늘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고 기억한다. 김씨 어머니(48)는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서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화장실에만 숨어 있어서 그랬다는 걸 뒤늦게 알고 한참 울었다"고 했다.

학교 폭력 피해 광주로 이사

김씨 어머니는 직장이 서울인 남편을 남겨둔 채 김씨와 딸(김씨 여동생)만 데리고 자기 고향인 광주광역시로 이사를 했다. 서울보다 지방 아이들이 더 순진하고 착해 아들을 감싸줄 것이라 믿었다.

김씨는 전남 K고에 입학해 새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지만 또다시 왕따가 됐다. 친구에게 맞아 안경이 부서진 이후 김씨는 무서워서 학교에 갈 수가 없어 자퇴했다.

김씨는 자퇴 후 하루 종일 혼자 멍하니 있거나 중얼거리다가 "근처에 누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수십 차례씩 하는 이상 증세를 보였다. 6개월간 김씨를 치료한 정신과 의사는 "지속적으로 학교 폭력을 당하면서 우울증, 가해학생이 꿈에 나오는 악몽, 대인관계 기피 등 증상이 점점 악화됐다"고 진단했다.

김씨는 전남의 G고로 학교를 옮겼지만 역시 적응이 어려워 한 학년 낮춰 서울 J고로 전학했다. 김씨보다 한 살 어린 급우들은 '정신병자' '또라이'라고 김씨를 놀렸다.

김씨 부모는 아들이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이 외로움 속에서 학교에 다니며 받은 고교 졸업장을 지금도 집 벽에 자랑스럽게 걸어놓았다. 부모는 한때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김씨를 서울의 한 신학대 음악과에 보냈다. 새 출발의 의미로 개명(改名)도 했다. 그러나 중2 이후 또래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는 김씨는 대학에서도 적응을 못했다.

김씨의 상황은 지난해 정신장애 4급 판정을 받고 공익근무를 하면서 극단으로 치달았다. 시설관리공단에 근무한 김씨는 집착과 강박증으로 하루에도 수십 차례 엄마에게 전화했다. 김씨는 여기서도 따돌림을 받자 스트레스가 심해져 부모에게 칼을 휘두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해자가 나를 보며 비웃는게 보인다"며 문을 부수고, 옷을 벗어던지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부모는 할 수 없이 지난해 연말 김씨를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시켰고, 현재까지 입원·통원 치료를 반복하고 있다.

김씨는 요즘 "나는 다음에 자식을 낳으면 아예 학교를 안 보낼 거다"라며 학교를 보낸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 김씨 아버지는 "다시 소송을 제기해 우리 애가 이렇게 망가진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해학생이나 학교가 '그때 처벌받았으니 문제없다'고 여길 것으로 생각하니 울분이 끌어 올랐다"며 "내가 아는 우리 아들은 다시 만날 수 없는데, 우리 아들 인생은 끝났는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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